틴 로맨스인 줄 알고 켰다가 예상보다 훨씬 묵직한 감정을 건드려서 당황했습니다. 《XO, Kitty》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면서도, 보고 나면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알고 있었나"라는 질문이 남는 드라마입니다. 연애 이야기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정체성과 자기이해의 서사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정체성 탐색: 이 드라마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이유
《XO, Kitty》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서사 구조입니다. 정확히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주인공이 처음과 끝에서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의 궤적이 뚜렷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한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심리적·정서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변화가 연애가 아니라 자기인식에 집중됩니다.
주인공 키티는 남자친구 대를 만나러 서울의 국제학교에 입학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거리 연애 해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키티를 움직이는 동력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느낀 건, 키티가 한국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로 인식하는 방식이 꽤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연애 서사와 맞물리는 방식이 생각보다 자연스러웠습니다.
틴 드라마 장르에서 정체성 탐색이 제대로 다뤄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연애 갈등에 치중하다가 정체성 이야기는 곁가지로 처리하기 일쑤인데, 이 드라마는 그 비중이 역전되어 있어서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 배경의 활용: 로케이션인가, 서사의 일부인가
해외 제작 드라마에서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할 때 가장 흔한 함정은 한국을 단순한 이국적 로케이션, 즉 이국성(Exoticism)으로만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이국성이란 특정 문화나 장소를 낯설고 신기한 볼거리로만 다루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나 정서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XO, Kitty》는 이 함정을 완전히 피해 갔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키티에게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로 기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예쁜 배경이 아니라 서사적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 따르면 K-콘텐츠를 활용한 해외 공동제작 프로젝트는 202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제작 방식 자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런 흐름 속에서 《XO, Kitty》는 스핀오프(Spin-off), 즉 기존 작품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야기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원작 시리즈인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의 세계관을 확장하면서도, 독립적인 서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기획력이 돋보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핀오프라고 하면 원작의 인기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원작을 모르는 시청자도 불편함 없이 몰입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성장 서사의 완성도: 중반부의 감정 혼란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중반부에서 키티가 자신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인식하기 시작하는 장면들은,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와 직결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감정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입니다. 감정 리터러시란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키티가 겪는 혼란은 단순히 "누가 더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내면의 혼란을 다루는 드라마들은 결국 명확한 선택으로 수렴시켜서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XO, Kitty》는 결말에서 완전한 해답을 주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오픈 엔딩(Open Ending)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오픈 엔딩이란 이야기가 완전한 해결 없이 끝나며 앞으로의 방향을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찜찜했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10대 시절의 감정 혼란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부 감정선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전개가 빠르게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특히 관계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후반부에서는 감정의 납득이 어려운 장면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특유의 에피소드 러닝타임 제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관전 포인트
제가 직접 보면서 정리한 《XO, Kitty》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키티의 처음 모습과 마지막 모습을 비교하며 보기. 어떤 부분이 달라졌고, 어떤 부분은 그대로인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 한국이라는 공간이 각 장면에서 어떤 서사적 역할을 하는지를 의식하며 보기. 단순한 배경 묘사인지, 키티의 내면과 연결된 장면인지를 구분하면 몰입감이 달라집니다.
-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들 각각의 이야기도 주의 깊게 따라가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어서, 주인공 중심의 시선으로만 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청소년 드라마에서 다양성 재현(Representation)은 최근 제작 기준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양성 재현이란 드라마 속 인물 구성에서 성별, 인종, 성 정체성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고루 포함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드라마는 그 기준을 의식적으로 충족하려 한 흔적이 보이며, 실제로 시청자 반응에서도 캐릭터 구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글로벌 콘텐츠 전략에서 다양성 재현이 핵심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넷플릭스 공식 다양성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Netflix).
이 드라마가 가볍게 보기 좋으면서도 보고 나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는 점은,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기도 합니다.
틴 로맨스를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다면 중반부쯤에서 예상과 다른 무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이 드라마의 장점입니다. 가볍게 시작해도 좋고, 진지하게 들여다봐도 얻을 것이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주말 오후에 부담 없이 틀었다가 생각보다 몰입하게 되는 경험을 찾고 계신다면, 충분히 추천할 수 있는 괜찮은 작품입니다.
참고: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