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런 테일러 존슨이 특수부대 출신 범죄 해결사를 연기한 《The Criminals》, 개봉 전부터 범죄 느와르 팬들 사이에서 꽤 회자됐던 작품입니다. 저는 오프닝 장면 첫 5분 만에 "이 영화, 가볍게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면 아마 당황했을 겁니다.
애런 테일러 존슨, 무너지는 인간을 연기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건 역시 주연 배우의 연기입니다. 애런 테일러 존슨이 연기한 '라이언 케인'은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가 아닙니다. 과거 특수부대(SOF, Special Operations Forces) 출신이라는 설정이 깔려 있는데, 여기서 SOF란 일반 군 병력과 달리 고도로 훈련된 비정규전·비밀 작전 전문 부대를 의미합니다. 라이언은 이 훈련된 냉정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조직 안에서 서서히 소모되는 인물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장면은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었습니다. 라이언이 술집 한켠에 혼자 앉아 동생 사진을 내려다보는 짧은 장면이었는데, 대사가 한 마디도 없었음에도 그 표정 하나로 지난 세월이 다 읽혔습니다. 이런 걸 영화 비평에서는 서브텍스트(subtext)라고 부릅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감정적 맥락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밀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해외 영화 비평 매체들도 "애런 테일러 존슨 커리어 최고의 범죄 연기"라는 평가를 내놓을 만큼,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 변신은 확실히 주목받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범죄 느와르 장르의 문법, 이 영화는 어떻게 따르고 또 비틀었나
범죄 느와르(Crime Noir)란 도덕적 모호함과 운명론적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범죄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주인공도 결국 어두운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The Criminals》는 이 장르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한 가지 부분에서 의식적으로 비틀었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경찰 조직을 정의의 편으로 두지 않는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점입니다.
보통 범죄 영화에서 경찰은 적어도 '불완전하지만 정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경찰 역시 정치권과 범죄 조직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라이언은 조직에서도, 경찰에서도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 양쪽으로부터의 배신 구조가 영화 긴장감을 내내 팽팽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 유럽 국제 범죄 조직 사건과 금융 범죄 구조를 참고해 제작한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 유럽 최대 수사 기관인 유로폴(Europol)의 보고에 따르면, 유럽 내 조직 범죄의 80% 이상이 합법적 경제 구조와 연결된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활용한다고 합니다(출처: Europol). 영화 속 라이언이 처리하는 현금 세탁 거래 장면이 단순히 극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범죄 구조의 반영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단순 오락물이 아니라 현실 기반의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액션 연출이 차별화되는 지점
《The Criminals》의 액션 연출을 논할 때,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택티컬 리얼리즘(Tactical Realism)입니다. 택티컬 리얼리즘이란 실제 군사·경찰 전술 훈련에 기반한 동작과 공간 활용을 영화 액션에 그대로 반영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Sicario》나 《Heat》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직접 체감한 차이는, 총격 장면에서 BGM을 거의 제거했다는 점입니다. 음악 대신 총성의 반향, 거친 숨소리, 발소리가 그대로 들립니다. 극장 환경에서 이 장면들은 꽤 강렬하게 귀를 압박했는데, 덕분에 화면 속 상황이 훨씬 현실감 있게 전달됐습니다.
특히 지하철 터널 추격전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시퀀스였습니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불빛과 총성만으로 방향을 가늠해야 하는 구조라, 관객도 라이언처럼 상황 파악이 쉽지 않은 시점으로 연출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장면이었습니다. 단순 스펙터클이 아니라 불안감 자체를 설계한 장면이었습니다.
《The Criminals》와 비슷한 접근 방식의 영화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Heat》(1995): 경찰과 범죄자 간 심리전 + 현실적 총격전의 원형
- 《Sicario》(2015): 제도의 회색지대와 묵직한 분위기의 결합
- 《John Wick》(2014): 택티컬 리얼리즘 기반 근접전 액션의 현대적 기준
이 세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The Criminals》는 충분히 기대에 부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상미와 OST, 분위기를 완성하는 두 축
영화의 색 보정 방식은 전형적인 범죄 느와르 톤을 따릅니다. 색 보정은 촬영 후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데, 컬러 그레이딩이란 영상의 색온도와 채도, 명암을 후반 작업 단계에서 조정해 특정 감정적 분위기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청회색 계열의 저채도 톤을 유지하며, 네온 조명이 등장하는 장면조차 따뜻하게 처리하지 않고 차갑게 눌러둡니다.
런던의 비 오는 골목길, 컨테이너가 쌓인 항구 야적장, 지하철 터널 안 빛의 잔상—이 세 공간이 영화의 핵심 무대인데, 세 장소 모두 색채를 최대한 억제한 방식으로 담겼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영상 처리는 관객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감을 누적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걸 꽤 능숙하게 활용합니다.
OST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음과 낮은 베이스 라인을 중심으로 한 사운드 디자인은 긴장감을 인위적으로 고조시키기보다는 배경처럼 깔아둡니다. 미국 영화음악 협회(SCL, Society of Composers & Lyricists)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효과적인 OST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출처: SCL), 이 영화의 음악은 그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솔직하게 짚자면, 이 영화는 끝까지 유머 요소가 없습니다. 120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숨 쉴 틈 없이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때문에, 가볍게 볼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The Criminals》는 범죄 조직의 구조와 그 안에서 소모되는 인간을 밀도 있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라이언이 비 내리는 항구를 혼자 바라보는 모습은, 이 영화가 내내 말하려 했던 것을 세 글자로 압축한 듯 허무하게 남았습니다. 범죄 느와르, 묵직한 액션, 심리 드라마를 한꺼번에 원하는 분이라면 이 작품은 충분히 시간을 낼 가치가 있습니다.
참고: youtube,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