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영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In the Hand of Dante》를 처음 틀었을 때 저는 그냥 범죄 스릴러 한 편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특정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깊이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단테의 원고 하나를 둘러싸고 700년의 시간이 충돌하는 이야기인데,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원고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인간 자체였음을 알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마피아와 중세 시인이 만나는 배경, 왜 이 설정인가
영화는 현대 뉴욕의 마피아 조직이 정체불명의 고문서를 손에 넣으면서 시작됩니다. 그 문서는 중세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가 직접 손으로 남긴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원본 일부로 추정됩니다. 《신곡》이란 단테가 14세기 초에 완성한 서사시로,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서사 구조를 통해 인간의 죄와 구원을 그린 작품입니다.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데, 바로 그 원본 필사본이 범죄 세계를 떠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닉 토시스(Nick Tosches)라는 학자이자 작가가 이 원고를 건네받습니다. 그는 처음에 위조품으로 의심하지만, 고문서학(Codicology)적 분석을 통해 진품 가능성에 다가갑니다. 고문서학이란 필사본의 재질, 잉크, 필체, 제작 연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문헌의 진위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닉이 원고를 펼쳐 조심스럽게 넘기는 장면에서 저는 그가 단순히 학자가 아니라 이미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인다고 느꼈습니다. 그 표정이 딱 "이건 내 손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닉 토시스 본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즉 작가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쓴 이야기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 욕망과 집착은 어느 정도 자전적 고백에 가깝습니다. 단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세계에서 원본 필사본의 발견은 실제로도 학문적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입니다. 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Dante Alighieri에 따르면 《신곡》은 14세기 초 완성 이후 수백 개의 필사본으로 전달됐으나 단테 자필 원본은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습니다. 이 공백이 영화의 설정에 현실적인 무게를 더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바로 교차편집(Cross-cutting) 구조입니다. 교차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장면을 번갈아 배치해 두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거나 연결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편집 기법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현재의 닉과 과거의 단테가 계속 교차됩니다. 그런데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감정을 겪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과거 장면에서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상태입니다. 정치적 유배(Political Exile), 즉 권력 싸움에서 패배해 고향을 잃은 채 타지를 떠돌며 글을 씁니다. 정치적 유배란 특정 세력에 의해 본국에서 강제로 쫓겨나 사회적 존재를 박탈당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테는 그 고통 속에서 지옥을 묘사했고, 그 묘사가 지금 닉의 현실과 겹칩니다. 닉 역시 문학 세계에서 주변부에 있던 인물이고, 이 원고가 자신을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점점 잠식됩니다.
저는 이 구조를 보면서 감독이 하려는 말이 꽤 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욕망의 문법은 7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테가 불멸의 이름을 갈망하며 글을 썼고, 닉은 단테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불멸을 찾으려 합니다. 마피아는 그 문서를 돈과 권력으로 환산하려 합니다. 세 가지 욕망이 모두 다른 형태지만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영화 속 대사와 장면 곳곳에 《신곡》의 상징 체계가 숨어 있습니다. 제가 특히 강하게 반응한 장면은 단테가 지옥(Inferno)의 첫 관문을 묘사하면서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부분이 닉의 현재 장면과 겹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연결이 설명 없이 그냥 편집으로만 처리됩니다. 그런데 그게 더 강하게 꽂혔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신곡》을 조금이라도 읽어두면 훨씬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고 난 뒤에야 단테 원전을 다시 찾아봤는데, 사실 순서를 바꿨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Project Gutenberg, The Divine Comedy에서 영문 번역본을 무료로 읽을 수 있으니, 관람 전 서시(Proem) 부분만이라도 훑어보면 영화 안의 인용이 어디서 왔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테와 닉의 욕망이 어떤 장면에서 겹치는지 교차편집 구조를 의식하며 본다
- 《신곡》의 지옥, 연옥, 천국 구조가 영화의 공간 연출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시각적으로 따라간다
- 마피아 조직이 원고를 원하는 이유와 닉이 원하는 이유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 비교하며 본다
이 영화가 결국 묻는 것, 예술은 구원인가 집착인가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한 가지 질문에 걸렸습니다. 닉 토시스는 진실을 찾는 학자였을까요, 아니면 위험한 세계에 매혹된 사람이었을까요. 영화는 이 두 가지를 깔끔하게 분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경계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학문적 진실을 향한 열망과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은 욕망은 시작점이 다를 뿐 행동으로는 구분이 안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 모호함을 잘 받쳐줍니다. 닉 역할 배우는 집착이 서서히 쌓이는 과정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저는 그가 처음 원고를 보는 장면과 후반부 원고를 쥐고 있는 장면의 눈빛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 그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지 않고 조용히 진행된다는 점이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단테 역할 배우는 고독하고 강한 존재감을 남깁니다. 특히 고통 속에서도 글을 멈추지 않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입니다.
예술 작품의 물신화(Fetishization)라는 개념을 이 영화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신화란 특정 사물에 그것 본래의 가치를 넘어선 의미나 권력을 투영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원고 자체는 양피지와 잉크의 결합이지만, 그것이 단테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가 모든 사람의 욕망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됩니다. 마피아에게는 돈이 되고, 닉에게는 명성이 되고, 역사에는 공백을 채우는 증거가 됩니다. 이 구조를 영화가 꽤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결말을 기대하면 분명히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상징적 연출이 많고 친절한 설명이 없습니다. 저도 이해하지 못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장면들이 분위기만으로 압도됐습니다. 이해 이전에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In the Hand of Dante》는 단테를 몰라도 볼 수 있지만, 알수록 더 깊이 빠지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 동안 특정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고, 결국 단테 원전을 다시 꺼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소비하고 잊히는 작품이 아니라, 보고 난 뒤 뭔가를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관람 전 《신곡》 서시 부분이라도 가볍게 읽어두고 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참고: netflix,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