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판타스틱 4퍼스트 스텝스 영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전 판타스틱 4 영화들을 보면서 번번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작품도 반신반의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드디어 이 팀이 제대로 된 영화를 얻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MCU 안에서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자리가 비로소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레트로 퓨처리즘이 만들어낸 완전히 다른 MCU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당한 건 비주얼이었습니다. 영화 속 뉴욕은 1960년대 스타일 그대로인데, 하늘을 가르는 비행 자동차와 아날로그 다이얼이 가득한 우주선이 아무렇지 않게 공존합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 퓨처리즘(Retro-Futurism)입니다. 레트로 퓨처리즘이란 과거 시대의 미학과 감성 위에 미래 기술을 얹어 표현하는 디자인 개념으로, 1950~60년대 우주 낙관주의 시대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방식입니다.
이 선택이 단순한 복고 취향에 그쳤다면 금방 지루해졌을 겁니다. 그런데 맷 샤크먼 감독은 이 미학을 내러티브와 단단하게 연결했습니다. 제작진이 스탠 리와 잭 커비 시절 원작 코믹스,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고전 SF를 핵심 레퍼런스로 삼았다는 게 프레임 하나하나에서 느껴졌습니다. 박스터 빌딩의 인테리어, 우주복 디자인, 조명 톤까지 일관된 세계관을 유지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MCU 안에서 가장 차별화된 시각적 언어를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평론 반응도 이 부분에 집중됐습니다. Rotten Tomatoes에 집계된 비평들은 "레트로 1960년대 디자인과 탄탄한 캐스트 케미가 판타스틱 4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공통적으로 꺼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비주얼 언어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캐릭터와 서사를 뒷받침하는 구조적 선택이었기 때문에 평론가들도 높이 산 것으로 보입니다.
갈락투스라는 선택이 가져온 우주적 공포
이전 판타스틱 4 시리즈가 닥터 둠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갈락투스(Galactus)를 메인 위협으로 내세웠습니다. 갈락투스란 마블 코믹스에서 행성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흡수해 살아가는 우주적 존재로, 단순한 악당 범주로 분류하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쉽게 말해 선악의 기준 자체가 인간의 척도 밖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설정 덕분에 영화는 "히어로 대 악당"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훨씬 넓은 서사 공간을 확보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갈락투스가 지구 상공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봤을 때, 압도감이 상당했습니다. 거대한 실루엣이 뉴욕 상공을 덮는 그 장면은 단순한 CG 스펙터클이 아니라 존재론적 위협처럼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 자체가 공포였습니다.
실버 서퍼로 등장하는 샬라 발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갈락투스의 헤럴드(Herald), 즉 선발대 역할을 수행합니다. 헤럴드란 갈락투스보다 먼저 도착해 에너지를 흡수할 행성을 탐색하고 준비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로, 코믹스 원작에서도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이 캐릭터를 단순한 조력자나 적으로 그리지 않고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로 설계한 점이 영화의 서사 깊이를 더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갈락투스 자체의 서사 배경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그가 왜 지구에 왔는지, 어떤 내적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우주적 공포감이 배가됐을 것입니다. 일부 평론에서 "비주얼과 캐릭터는 훌륭하지만 서사는 다소 단순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부분 때문이라고 봅니다.
판타스틱 4의 가족 케미, 이번엔 진짜였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부분은 결국 네 사람의 관계였습니다. 영화는 오리진 스토리를 생략하고 이미 세상에 알려진 영웅 팀으로 시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는데, 보다 보니 오히려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설명 대신 관계 자체를 보여주는 데 러닝타임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드로 파스칼의 리드 리처즈는 제가 기대했던 천재 과학자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논리적이고 냉정한 인물보다는, 가족을 지키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바네사 커비의 수 스톰은 영화 전체의 감정적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한 보조 캐릭터가 아니라 팀 전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리더로 그려졌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벤 그림 캐릭터는 예상보다 훨씬 감정적이었습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괴력 중심 캐릭터로만 소비됐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와 외로움이 진지하게 다뤄집니다. 어린아이와 짧게 대화하는 장면 하나가 다른 어떤 액션 장면보다 더 깊이 남았습니다. 이 장면이 이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의 가족 케미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식탁 다툼과 농담 장면 등 일상적 관계를 영웅 서사와 자연스럽게 섞은 연출
- 리드-수의 관계를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팀 전체의 구심점으로 설계한 서사 구조
- 벤 그림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공포를 감정선 중심에 배치한 캐릭터 설계
- 조니 스톰의 철없는 캐릭터성을 개인적 희생 서사와 연결한 후반부 전개

흥행과 평론, 숫자가 말해주는 것
《The Fantastic Four: First Steps》는 글로벌 흥행 수익 5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MCU의 새로운 흥행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수치는 최근 몇 년간 MCU가 멀티버스 피로감으로 고전하던 흐름과 대조됩니다. 멀티버스(Multiverse)란 서로 다른 법칙으로 운영되는 병렬 우주들이 공존하는 개념으로, MCU는 페이즈 4~5에 걸쳐 이 설정을 핵심 서사로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멀티버스 설정에 의존하는 대신 단독 세계관 안에서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구축했고, 그것이 오히려 관객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MCU 페이즈 6의 구조적 특성상 판타스틱 4를 어벤저스 급 팀으로 성장시키는 장기 로드맵을 설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서 판타스틱 4는 MCU 어벤저스에 해당하는 위상을 가진 팀입니다(출처: Marvel Entertainment). 이번 영화가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라 이후 MCU 전체 서사와 어떻게 연결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국내 관객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판타스틱 4 영화가 나왔다", "인크레더블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인크레더블》이 떠오른 건 사실인데, 그 비교가 전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슈퍼히어로 가족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라는 뜻이니까요.
《The Fantastic Four: First Steps》는 MCU가 한동안 잊고 있던 것을 되찾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한 설정 없이 모험 자체의 즐거움, 그리고 함께라는 감각이 중심에 있는 영화입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레트로 퓨처리즘 비주얼과 네 사람의 케미만으로도 극장에 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MCU를 최근에 멀리하던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재진입 지점으로 삼아볼 만합니다.
참고: YouTube, ChatGPT, Rotten Tomatoes, Marvel Entertai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