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런 종류의 영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탐정이 사건을 쫓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틀었는데, 보고 나서 예상을 한참 벗어나 버린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가 아니라, 한 시대가 조용히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영화였습니다. 이해하려 애쓸수록 안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 그게 이 영화의 정체입니다.
누아르 문법 위에 히피 시대의 공기를 얹다
일반적으로 누아르(noir) 장르라고 하면 어둡고 비 내리는 도시, 냉소적인 탐정, 명확한 악당 구도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누아르란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발전한 범죄 영화 양식으로, 도덕적 모호함과 운명론적 세계관이 특징인 장르입니다. 그런데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이 공식을 1970년 캘리포니아 해변 마을 고르디타 비치에 가져다 놓고, 거기에 히피 문화의 느슨함과 음모론적 불안을 뒤섞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처음 30분은 이게 코미디인지 스릴러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원작은 토머스 핀천의 384쪽 소설입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각색(screenplay) 과정에서 소설의 문장을 단위별로 분해한 뒤 압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각색이란 원작 소설을 영화 대본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의미하는데, 이 작품은 그 충실도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의상상 후보에도 함께 올랐는데, 1970년대 해변 문화의 질감을 세밀하게 살린 의상들은 실제로 화면에서 시대를 체감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이 영화가 참고한 레퍼런스도 명확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 로버트 알트먼의 《롱 굿바이》, 그리고 치치 앤 총 특유의 마리화나 코미디까지. 이 세 가지가 뒤섞이면 어떤 영화가 되는지 궁금하다면,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그 답입니다. 《롱 굿바이》처럼 탐정 장르의 문법을 비틀면서도, 시대에 대한 애도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패러디와는 결이 다릅니다.
이 영화의 핵심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건의 해결보다 분위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감상의 핵심
- 닥과 빅풋 비요른슨의 관계, 즉 히피 탐정과 권위적 경찰의 기묘한 공생 구도
- 샤스타 페이 헵워스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잃어버린 시대와 사랑
특히 샤스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팜므파탈이란 누아르 장르에서 남성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샤스타는 닥을 이용하는 인물이 아니라, 닥이 놓아버린 60년대의 이상주의 그 자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한 시대 전체가 사라지는 것의 은유로 읽혔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영화가 남긴 흐릿함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가 연기한 닥 스포텔로는 늘 반쯤 취한 것처럼 보이고, 수사는 우연과 혼란으로 가득합니다. 일반적으로 탐정 캐릭터는 논리적이고 명민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닥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건의 핵심에 계속 다가갑니다. 이 아이러니가 영화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의 원천입니다.
서브텍스트(subtext)라는 개념으로 이 영화를 보면 훨씬 선명해집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장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고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주제나 의미를 뜻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약 조직 골든 팽, 실종된 음악가 코이 할링겐, 수상한 치과의사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뒤엉킨 미스터리이지만, 그 아래에는 60년대 히피 이상주의가 부동산 자본과 경찰 권력에 밀려 사라지는 과정에 대한 애도가 깔려 있습니다. 색감은 햇살처럼 따뜻한데 이야기의 속은 쓸쓸합니다. 그 간극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하게 불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캐서린 워터스턴, 조시 브롤린, 오언 윌슨, 리스 위더스푼, 베니치오 델 토로 등 배우진은 각자의 장면에서 인상을 남기지만, 구심점은 언제나 호아킨 피닉스입니다.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 기준으로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관객 점수와는 꽤 차이가 납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이 간극이 영화의 성격을 잘 설명해 줍니다. 플롯을 따라가려는 관객에게는 산만하고 불친절한 영화이지만, 분위기와 정서를 따라가는 관객에게는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각색상과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도 이 영화의 성격을 반증합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여기서 아카데미 각색상이란 기존 원작을 영화 시나리오로 재구성한 작업에 수여하는 부문으로, 핀천의 난해한 소설을 그나마 이 정도로 풀어낸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취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단점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플롯은 일부러 복잡하고 산만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범죄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보면 당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영화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 장점: 1970년대 히피 문화를 세밀하게 재현한 시각적 완성도, 호아킨 피닉스의 몸으로 연기하는 방식, 누아르와 코미디를 섞은 독창적인 장르 실험
- 단점: 의도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플롯, 집중력을 요구하는 긴 러닝타임,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구조
결국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 영화의 실패가 아니라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의문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바로 그 흐릿함이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닥의 몸짓이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어딘가 진실에 닿아 있다는 느낌.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사건을 풀려는 영화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작품이 처음이라면 《부기 나이트》나 《매그놀리아》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이 영화만의 몽롱하고 쓸쓸한 감각은 다른 어디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참고: CGV,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