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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 없다' (캐스팅, 블랙코미디, 관람 포인트)

by 조아가자 2026. 4. 9.

극장을 나오면서 "내가 만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는 2025년 9월 24일 개봉 첫날에만 33만 명 이상이 찾은 작품입니다. 웃기면서도 불편하고, 공감되면서도 불안한 이 영화, 어떻게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제가 직접 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 이병헌·손예진 캐스팅, 기대 이상이었나

솔직히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조합이 과연 맞을까"라는 의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배우들인지라, 자칫 스타 파워에만 기댄 흥행용 캐스팅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아보니 그 걱정이 꽤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주인공 만수는 25년간 제지회사에서 일한 평범한 가장입니다. 제지회사란 종이와 관련된 원자재를 생산·가공하는 제조업 분야로, 영화 속에서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상징적 배경으로 활용됩니다. 이병헌은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무너지는 내면을 절제된 표정과 작은 몸짓으로 표현했는데,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가 혼자 차 안에 앉아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었지만, 그 공허함이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손예진이 연기한 아내 미리도 단순히 남편 옆에서 걱정하는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지키려는 현실적인 분투와, 만수의 선택을 모른 채 일상을 이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겹치면서 오히려 더 복잡한 감정을 유발했습니다. 두 배우의 앙상블(ensemble), 즉 배우들 간의 유기적 호흡이 살아 있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로 끝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차승원,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각각 만수를 둘러싼 사회적 압박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등장하는데, 특히 염혜란은 기존 작품들과 전혀 다른 결의 역할로 나타나 장면마다 신선한 긴장감을 심어줬습니다.

이 영화의 캐스팅에서 제가 평가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병헌: 해고와 생존 압박 사이 절박한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
  • 손예진: 모르면서도 지키는 아내의 아이러니한 위치를 현실적으로 구현
  • 차승원·이성민: 구조적 경쟁의 상징으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
  • 염혜란: 기존 필모그래피와 다른 캐릭터로 장면마다 새로운 온도를 삽입

● 블랙코미디 장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블랙코미디라고 해서 가볍게 웃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꽤 당황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과 불편함이 밀려오는 순간이 정확히 같은 장면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란 죽음, 폭력, 사회 부조리 같은 어두운 소재를 유머의 틀로 포장해 전달하는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웃기지만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불편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방식입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원작 소설 The Axe가 이 장르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 박찬욱 감독은 여기에 한국적 노동 현실을 얹어 재구성했습니다.

영화에서 만수가 세우는 계획은 충격적입니다. 재취업 경쟁에서 자신보다 조건이 나은 경쟁자들을 제거해 경쟁률을 낮추겠다는 발상인데, 이 설정 자체가 극단적입니다. 그런데 이 황당한 계획이 웃기면서도 오싹한 이유는, 그 배경에 실직, 가족 부양, 나이와 경력 사이에서 치이는 현실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배치 등 화면 안에 들어오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연출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평범한 아파트 거실이나 사무실 같은 일상 공간을 미장센으로 극단적 긴장감을 빚어내는 데 능숙한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방식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제가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장면이 웃긴 건지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는 혼란이 꽤 길게 이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40~50대 중·장년층의 재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1개월 이상으로, 이 연령대의 노동시장 재진입 장벽이 다른 연령층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화 속 만수가 1년이 넘도록 취업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단순한 극적 설정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맥락을 알고 보면 그의 선택이 황당하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 관람 전 알아두면 좋은 포인트

"박찬욱 감독 영화니까 전작처럼 강렬하고 어두울 거야"라고 예상하고 들어간다면 이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 결이 다릅니다. 기존 작품들이 시각적 자극과 심리적 혼란을 앞세웠다면,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일상의 묘사와 캐릭터의 내면 변화에 더 오랜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를 두고 "더 인간적이고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고, "박찬욱 특유의 예리한 톤이 약해졌다"고 아쉬워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이 양쪽 반응 모두 이해가 됩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을 끌어오면 이 영화의 엔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타르시스란 관객이 이야기를 통해 감정적으로 해소되고 정화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일부 관객들이 "엔딩의 여운이 강하지 않다"고 느낀 이유는, 이 영화가 카타르시스보다는 질문을 남기는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만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극장 밖까지 따라온다면, 그게 이 영화의 의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신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개봉 한국 영화 중 블랙코미디 장르의 누적 관객 수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일수록 관객 재방문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어쩔수가 없다'가 개봉 첫날 2,114개 스크린에서 33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관람 전 알아두면 도움이 될 사항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전작 대비 시각적 자극보다 인물 내면의 변화에 집중된 구조
  • 웃음과 불편함이 동시에 오는 장면이 많으므로 감정적 여유를 갖고 입장할 것
  • 엔딩이 열려 있는 편이므로, 답을 찾기보다 질문과 함께 나오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합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가능하면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보고 나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나눠보시길 권합니다. 블랙코미디 장르 특성상 그 대화 자체가 영화의 연장선이 되는 경우가 많고, '어쩔수가 없다'는 특히 그런 대화를 유발하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현실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You 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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