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예상치 못한 감정에 묵직하게 눌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Supergirl》을 보고 나서 정확히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액션을 기대했는데 상실과 외로움이 먼저 치고 들어왔습니다. 이 영화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인지, 보기 전에 알았다면 훨씬 더 준비된 마음으로 봤을 것 같습니다.

크립톤 출신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물
영화는 크립톤(Krypton) 행성이 멸망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크립톤이란 DC 세계관에서 슈퍼맨과 슈퍼걸의 고향 행성으로,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존재했던 곳입니다. 카라 조엘은 사촌인 칼엘, 즉 훗날 슈퍼맨이 되는 인물을 지키기 위해 우주선에 탑승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지구가 아닌 우주 곳곳을 떠돌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가 꺼내는 개념이 시간 왜곡(Time Dilation)입니다. 시간 왜곡이란 물리학에서 중력이나 속도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현상을 뜻합니다. 덕분에 칼엘은 이미 성인이 되어 슈퍼맨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카라는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우주를 떠돌고 있습니다. 지켜야 했던 사람이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상황, 저는 이 설정에서 카라의 죄책감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인지 바로 느껴졌습니다.
카라는 자신이 지구 사람도, 완전한 크립톤 사람도 아니라는 정체성 혼란(Identity Crisis)을 겪습니다. 정체성 혼란이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규정하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슈퍼맨은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 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 혼란의 결이 다릅니다. 카라는 크립톤의 기억을 가진 채로 이미 사라진 세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정선이라고 느꼈습니다.
슈퍼맨과 비교했을 때 카라가 훨씬 냉소적이고 충동적인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슈퍼맨은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구라는 '집'이 있었습니다. 카라에게는 그 집이 없습니다. 크립톤은 없어졌고, 지구는 낯선 곳이며, 우주는 위협으로 가득합니다. 분노와 상처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건 카라가 루시라는 어린 소녀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루시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우주 해적과 군벌 세력에게 쫓기는 인물입니다. 저는 둘이 처음 마주치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단순한 보호자 서사가 되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카라는 루시를 동정해서 돕는 게 아닙니다. 루시에게서 자기 자신의 상처를 보고 있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루시의 복수심은 영화가 꽤 오래 들여다보는 주제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영화가 복수를 정의로 다루는지 분노로 다루는지를 계속 따져보게 됐습니다. 영화의 결론은 단정적이지 않습니다. 복수는 루시에게 방향을 주는 동시에 루시를 소진시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딜레마(Moral Dilemma), 즉 어떤 선택을 해도 완전한 정답이 없는 상황을 영화는 루시를 통해 보여줍니다.
카라가 끝까지 루시를 놓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카라가 지키지 못했던 크립톤의 기억, 칼엘 곁에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 모든 것이 루시라는 존재와 겹쳐집니다. 단순한 동정이었다면 영화 중반쯤에 관계가 느슨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둘이 함께 여행하며 조금씩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Supergirl》의 원작 코믹스인 《Supergirl: Woman of Tomorrow》는 서부극(Western) 장르의 문법을 우주 배경에 이식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서부극이란 황야를 배경으로 한 외로운 방랑자가 약자를 보호하며 자신의 법칙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장르입니다. 영화 역시 이 분위기를 강하게 흡수했습니다. 우주선 술집, 현상금 사냥꾼, 황폐한 행성들, 외계 군벌. 기존 DC 도시 중심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이었습니다. 저는 이 톤의 변화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Supergirl: Woman of Tomorrow》 원작 코믹스에 대한 평가와 배경은 DC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 슈퍼맨과 무엇이 다른가
슈퍼맨 영화에서 희망은 대체로 선명합니다. S 심볼 자체가 크립톤 언어로 '희망'을 뜻한다는 설정처럼, 슈퍼맨이 하늘을 나는 장면만으로도 관객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Supergirl》이 다루는 희망은 그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습니다.
카라에게 희망이란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아닙니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존재 곁에 끝까지 있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전투 장면보다 카라가 자신의 상처를 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장면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그 조용한 순간이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맥스처럼 느껴졌습니다.
《Supergirl》을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카라와 루시의 관계 변화: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두 인물로 읽어야 합니다.
- 우주 서부극 비주얼: 황폐한 행성, 외계 군벌,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설정이 DC 세계관과 어떻게 충돌하고 섞이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 슈퍼맨과의 비교: 같은 크립톤 출신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정의하는 두 인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영화의 주제가 선명해집니다.
- 감정선의 속도: 액션보다 감정이 앞서는 영화입니다.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지만, 그 느린 호흡이 카라라는 인물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임을 염두에 두면 훨씬 몰입하기 좋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DCU), 즉 DC 스튜디오가 새롭게 설계하는 리부트 세계관에서 《Supergirl》이 어떤 위치를 갖는지에 대한 최신 정보는 DC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 리부트 프로젝트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향후 세계관 확장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의 전개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중반부에서 한 번 흐름이 느슨해진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이 없었다면 카라라는 인물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쌓이지 않았을 겁니다. 상처받은 영웅이 다시 힘을 쓰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Supergirl》은 빠르게 소비하는 히어로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카라라는 인물이 머릿속에 남는 작품입니다.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상실 속에서도 다시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로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말하는 '슈퍼'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 지쳐 있다면, 혹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이 영화가 꽤 유효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참고: netflix, youtube, DC 공식 사이트(https://www.d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