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데어 윌 비 블러드 (대니얼 플레인뷰, 탐욕, 인간 붕괴)

by 조아가자 2026. 5. 30.

데어 윌 비 블러드

솔직히 저는 이 영화 보기를 오래 미뤄뒀습니다. 158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지레 겁을 먹었고, 서부극 같은 포스터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이 영화에 취해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있어야 했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성공 신화를 다루면서도 그 신화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해체하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오래 남는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대니얼 플레인뷰, 성공할수록 비어가는 사람

영화는 주인공 대니얼 플레인뷰가 은을 캐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그저 곡괭이질만 보여주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줬습니다. 그가 다리를 다치고도 광산 밖으로 기어 나와 광권(鑛權), 즉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확보하는 장면에서 이미 이 인물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부상도, 고통도, 그의 전진을 막지 못합니다.

저는 이 도입부를 보면서 대니얼을 처음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성실하고 강인하고, 고아가 된 아이 H.W.를 거두어 아들로 삼는 모습까지 보면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거든요. 그게 제 실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는 관객이 대니얼에게 잠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 다음 그걸 천천히 부숩니다.

그가 사업을 키울수록 H.W.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유정(油井) 폭발 사고로 아들이 청력을 잃자 그는 아들을 걱정하기보다 사업 차질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여기서 유정이란 석유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하까지 뚫어 놓은 시추공을 의미합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성공담이 아니라 인간 붕괴기를 담은 영화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챘습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구현해낸 대니얼 플레인뷰는 배우와 캐릭터의 경계가 없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연기였습니다. 그의 목소리 톤 하나, 걸음걸이 하나가 모두 이 인물의 탐욕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기로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저는 그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탐욕의 두 얼굴, 대니얼과 일라이의 대립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대니얼과 설교자 일라이 선데이의 대립 구도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 석유 사업가와 종교 지도자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두 사람은 욕망의 방향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입니다.

일라이는 교회라는 제도적 권위(institutional authority)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려 합니다. 여기서 제도적 권위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종교·법·관습 같은 시스템에서 나오는 권력을 뜻합니다. 반면 대니얼은 석유와 돈이라는 경제적 지배력으로 땅과 사람을 소유하려 합니다. 폴 다노가 연기한 일라이는 표정 하나하나가 불안했습니다. 열정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인정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조금씩 드러내는 연기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자본과 종교를 단순히 대비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된다고 느꼈습니다. 둘 다 인간 욕망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시각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때문에 마지막 볼링장 장면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를 "피가 흐르는 성공 신화"라고 느낀 것은 바로 그 장면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니얼 플레인뷰가 H.W.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비교하며 보기
  • 일라이가 대니얼에게 굴복하는 순간들과, 대니얼이 그걸 즐기는 방식 주목하기
  • 두 사람의 최후 대면 장면에서 누가 먼저 무너지는지 확인하기

인간 붕괴를 담은 사운드와 촬영

이 영화에서 음악을 맡은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의 스코어(score)는 기존 영화음악의 문법을 완전히 깼습니다. 스코어란 영화의 장면에 맞춰 작곡된 배경음악 전체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보통 영화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안내하거나 달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영화의 음악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고, 때로는 장면과 충돌하듯 밀어붙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맞나?' 싶었는데, 그 불쾌한 긴장감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Robert Elswit)의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네마토그래피란 영화의 조명, 카메라 앵글, 색감, 구도를 포함한 시각적 언어 전체를 의미합니다. 황량한 사막, 검은 석유가 분출되는 장면, 불타는 유정을 담은 화면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거의 신화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텍사스 마파(Marfa) 등지에서 실제 촬영한 덕분에 광활함이 스크린 밖으로 넘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과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두 부문 모두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것들이라 수상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부문을 못 받은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가 쉽지 않은 이유, 그럼에도 봐야 하는 이유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58분의 러닝타임 동안 폭발적인 사건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한다면 분명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의 호흡은 느리고, 주인공은 차갑고, 감정적인 카타르시스(catharsis)도 거의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적으로 쌓인 긴장이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해소되며 관객이 느끼는 해방감을 뜻합니다. 이 영화에는 그 해방감 대신 묵직한 공허함이 남습니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와 연기력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특정 장면이 계속 떠오릅니다. 마지막 볼링장 장면에서 대니얼이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는 인상이 그랬습니다. 그 공허함이 성공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는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 평론가 지수 91%, 메타크리틱 점수 93점을 기록하며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출처: Rotten Tomatoes). 평론가들의 평가가 높은 이유는 단순히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과 세밀한 심리 묘사로 동시에 잡아낸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을 향해 달리다 인간이기를 멈춰버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의도한 바일지도 모릅니다. 한 번쯤은 긴 호흡으로 이 영화를 끝까지 봐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나서 어떤 감정이 남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YouTube, ChatGPT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