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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모먼트> 리뷰 (모큐멘터리, 찰리XCX, A24)

by 조아가자 2026. 4. 9.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그냥 '찰리 XCX 팬들을 위한 콘서트 다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면서 꽤 오랫동안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팝 스타 한 명의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 대중문화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그 방식이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큐멘터리 형식이 만들어낸 '허구적 현실'

『더 모먼트』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여기서 모큐멘터리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구적 요소가 섞인 구조로 연출된 영화 형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사실을 기록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치밀하게 설계된 픽션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더 모먼트』는 이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찰리 XCX가 2024년 발표한 브랫(Brat) 앨범 투어 준비 과정을 따라가면서 현실과 연출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제가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이 모호함이 오히려 영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점이었습니다. 찰리가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말투, 리허설 장면의 긴장감은 마치 진짜 현장을 엿보는 것 같은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연출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더라구요. "지금 내가 보는 게 진짜인가?"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면에서도 이 작품은 기존 전기 영화나 뮤지션 다큐멘터리와 분명히 다릅니다. 일반적인 성공담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심리적 긴장과 업계 압박을 감정의 밀도로 보여줍니다. 감독 에이단 자미리와 각본가 버티 브랜디스는 이 구조를 통해 팝 스타의 성공 서사 대신 불안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 점에서 찰리 XCX를 단순한 출연자로 볼 수 없습니다. 그녀는 프로듀서로서 영화 제작 전반에 관여했고, 영화의 원안 아이디어도 직접 제공했습니다. 자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을 픽션의 틀 안에 담았다는 점에서, 이건 자전적 픽션(autofiction)에 가깝습니다. 자전적 픽션이란 실제 인물의 경험을 소재로 하되 허구적 재구성을 거친 창작 방식으로, 문학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형식입니다.

조연진 구성도 이 구조를 뒷받침합니다.

  • 로잔나 아퀘트: 음악 업계 고참 인물로 등장, 기성 세대와 신세대 아티스트 간의 인식 차를 대변
  • 케이트 벌런트: 찰리의 내면적 갈등을 외부화하는 매개 역할, 유머와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영화의 메시지를 강화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레코드 회사 대표로 등장, 상업적 시스템과 개인 창작 욕망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
  • 케이트 벌런트, 제이미 드메트리우: 제작 팀 주변 인물로 코미디와 드라마의 균형을 조율

저는 특히 케이트 벌런트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서,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찰리의 심리적 분신처럼 기능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가 품고 있는 불안과 유머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찰리XCX와 A24가 택한 팝 컬처 비평의 방식

영화는 2026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선댄스 영화제란 매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리는 독립영화 중심의 세계적 영화제로, 상업 영화 외곽에서 실험적 작품을 발굴하는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A24가 배급을 맡아 전 세계 일부 국가에 한정 개봉했다는 점은,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A24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미드소마』 등을 배급한 스튜디오로, 실험적 서사와 강렬한 감각적 연출로 특정 관객층에게 강한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이 배급사가 『더 모먼트』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을 단순한 팝 스타 홍보물이 아닌 독립 예술 영화로 포지셔닝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해외 반응을 보면, 평론가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가 눈에 띕니다. "찰리 XCX의 스크린 존재감이 작품의 핵심 자산"이라는 호평과, "모큐멘터리적 풍자가 충분히 날카롭게 발휘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공존합니다. 저는 이 두 평가가 모두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풍자의 날카로움을 기대했던 관객과 심리적 진정성을 기대했던 관객이 전혀 다른 영화를 본 셈이 됩니다.

모큐멘터리 형식은 본래 대상을 비틀어 보는 장치인데, 이 영화는 찰리 자신이 대상이면서 동시에 제작 주체이기도 합니다. 그 이중성이 풍자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약점이 아니라 의도된 긴장이라고 봅니다.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옹호하는 복잡한 감정, 그게 이 영화가 담고자 한 핵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팝 음악 업계에서 아티스트 정체성이 어떻게 상업적 체계에 의해 흔들리는지에 관해서는, 음악 산업 연구 매체들도 꾸준히 다루어온 주제입니다. 팝 스타의 퍼소나(persona), 즉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축된 공적 자아와 실제 내면 사이의 간극은 현대 대중음악 담론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그 간극을 찰리 XCX라는 실존 아티스트를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팝 문화 비평으로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Sundance Institute).

국내 관객 반응도 비슷하게 나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듯 모를 듯하다"는 의견과 "새로운 종류의 팝 컬처 영화"라는 반응이 공존합니다. 저는 이 두 반응이 동시에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한 해답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영화이지만, 질문 자체를 즐기는 관객에게는 상당히 풍성한 경험을 줍니다. 대중음악과 영화의 융합 사례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음악 영화사에서 이런 형식의 작품이 어떻게 위치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출처: A24).

『더 모먼트』를 한 번 보고 끝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찰리가 영화를 통해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계속 떠올렸습니다. 유명세가 주는 압박, 창작과 상업 사이의 균열,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통제하려는 아티스트의 욕망. 이 영화가 모든 질문에 깔끔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이 작품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찰리 XCX의 음악적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팝 산업이 아티스트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다른 각도로 보고 싶다면, 한 번은 볼 만한 작품입니다.

 


참고: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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