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이 히어로보다 더 설득력 있다면, 그 영화는 성공한 겁니다.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MCU 페이즈6의 핵심작으로, 멀티버스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개봉 직후 영화관에서 봤는데, 솔직히 처음 20분은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했습니다.
● 멀티버스 크로스오버, 이번엔 진짜 터졌다
MCU에서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개념은 꽤 오래전부터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멀티버스란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법칙을 가진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가 공존한다는 설정입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도 이 개념을 다뤘지만, 솔직히 그때는 맛보기 수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둠스데이》는 달랐습니다. 멀티버스 균열(Incursion)이 실제로 세계와 세계를 충돌시키는 위기로 전면 등장합니다. 여기서 인커전이란 두 개의 평행 우주가 물리적으로 충돌해 하나 혹은 둘 다 소멸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주 자체가 서로 부딪혀 사라진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스크린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굉장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핵심 긴장감을 만드는 장치였다는 겁니다.
어벤져스, 뉴 어벤져스, 판타스틱 포, 엑스맨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크로스오버(Cross-over) 장면은 팬이라면 말 그대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습니다. MCU가 폭스 스튜디오로부터 엑스맨 판권을 되찾은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합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출처: Variety).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멀티버스 인커전으로 인한 우주 충돌 전투 장면
- 엑스맨과 어벤져스의 첫 본격 합류 크로스오버
- 서로 다른 우주의 동일 인물들이 마주치는 장면
- 《시크릿 워즈》로 이어지는 복선 구조

● 닥터 둠, MCU 역대 빌런과 무엇이 다른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이언맨으로 15년 이상 각인된 배우가 빌런으로 등장한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니, 이게 그냥 캐스팅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닥터 둠, 즉 빅터 폰 둠은 MCU 기존 빌런들과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타노스가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울트론이 인류를 위협으로 봤다면, 둠은 철학적 신념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무질서하고 불안정한 멀티버스를 하나의 완벽한 질서로 통합하려 합니다. 이걸 악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저는 이 점이 영화의 깊이를 끌어올리는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캐릭터 분석 측면에서 보면, 둠은 일종의 리오더링(Re-ordering), 즉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자신의 논리로 재편하려는 존재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그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게 기존 MCU 빌런 서사와 가장 큰 차이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력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특유의 카리스마가 아이언맨 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됐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차갑고 확신에 차 있되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은 그 미묘한 균형이 둠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 루소 형제 연출, 《엔드게임》과 얼마나 다른가
루소 형제가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는 건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이어온 연출 스타일이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루소 형제 특유의 연출 방식은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을 다루는 방식에서 두드러집니다. 앙상블 캐스팅이란 단일 주인공이 아닌 다수의 캐릭터가 동등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수십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장면마다 누구의 시선인지를 명확히 잡아주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면도 있었는데, 영화 초반 병렬 전개 구조가 꽤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MCU를 꾸준히 봐온 저도 가끔 흐름을 잡는 데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후반부 대규모 전투는 《엔드게임》의 포털 장면에 비견될 만큼 스케일이 컸습니다. 다만 감정적인 무게감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엔드게임》의 경우 11년에 걸친 서사가 집약된 순간이었던 반면, 《둠스데이》의 전투는 앞으로 올 《시크릿 워즈》를 향한 예고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단점이라기보다는 역할의 차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원래 《캉 다이너스티》라는 제목으로 기획됐다가 주요 빌런이 교체되며 대대적으로 수정된 작품입니다. 제작사 측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스토리 방향 자체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입니다(출처: Marvel 공식 사이트).
MCU 페이즈6와 《시크릿 워즈》, 이 영화가 놓인 위치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단독 작품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부 캐릭터는 등장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수준이었고, 서사적 깊이보다 시각적 볼거리에 집중된 씬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도 몇몇 캐릭터가 너무 소모적으로 쓰인 것 같아서 관람 후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페이즈6의 중간 거점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시각이 열립니다. 내러티브 브리지(Narrative Bridge)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두 개의 큰 이야기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둠스데이》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멀티버스 붕괴라는 위기를 설정하고, 그 위기의 진짜 해결 혹은 파국을 《시크릿 워즈》에 넘기는 구조입니다.
멀티버스 서사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MCU는 페이즈4부터 페이즈6까지 이른바 멀티버스 사가(Multiverse Saga)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멀티버스 사가란 인피니티 사가가 타노스와 인피니티 스톤으로 연결됐듯, 이번 챕터는 멀티버스 붕괴와 닥터 둠이라는 축으로 연결된 연작 시리즈를 뜻합니다. 이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영화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캐릭터 과잉으로 엉망이 될 거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일종의 정교한 설계가 느껴졌거든요. 물론 모든 캐릭터를 만족스럽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핵심 축인 둠과 멀티버스 위기 구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벤져스: 둠스데이》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MCU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으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작품이었다고 봅니다. 닥터 둠이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고, 멀티버스 크로스오버의 시각적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MCU를 꾸준히 따라온 관객이라면 《시크릿 워즈》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주요 페이즈6 작품들을 미리 챙겨보고 가시길 권합니다.
참고: YOUTUBE,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