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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비타민 B12를 꽤 오랫동안 '빈혈 예방 영양소'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채식 식단을 직접 짜보려고 영양성분을 하나하나 따져보다가, B12 항목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식물성 식품에는 자연적으로 B12가 없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제대로 인식했고, 이후 흡수 메커니즘을 공부하면서 '먹는 것'과 '흡수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B12 흡수 메커니즘, 알고 나면 채식 결핍이 다르게 보입니다
B12를 처음 공부할 때 저는 이 영양소가 혈액과 관련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신경계 쪽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비타민 B12(코발라민, cobalamin)는 적혈구 형성과 DNA 합성은 물론, 신경을 감싸는 수초(myelin sheath) 유지에도 관여합니다. 여기서 수초란 신경 신호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신경 섬유를 감싸는 절연 층을 말합니다. 이게 손상되면 손발 저림이나 감각 이상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B12가 오래 부족하면 거대적아구성 빈혈(megaloblastic anemia)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거대적아구성 빈혈이란 세포 분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비정상적으로 크고 미성숙한 적혈구가 만들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피로와 쇠약감이 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하면서 놀랐던 부분은, 빈혈 없이 신경학적 증상만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빈혈 없으니 B12는 괜찮다"는 식의 판단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흡수 과정도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음식 속 B12는 단백질과 결합된 채로 들어옵니다. 위산이 이 결합을 끊어줘야 B12가 자유로워지고, 그 다음에 내인성 인자(intrinsic factor)와 결합해야 합니다. 내인성 인자란 위 벽세포에서 분비되는 당단백질로, B12가 소장 끝부분인 회장에서 흡수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단계 중 하나라도 막히면, 아무리 B12가 든 음식을 먹어도 몸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채식 이야기로 넘어오면 문제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달걀과 유제품을 포함하는 채식인이라면 섭취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물성 식품을 완전히 배제하는 비건 식단에서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출처: NIH Office of Dietary Supplements에 따르면, 식물성 식품에는 자연적으로 B12가 존재하지 않으며, 강화식품은 예외입니다.
저도 한번 완전한 비건 식단을 표에 그려봤습니다. 현미, 두부, 다양한 채소, 견과류까지 꽤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B12 칸을 채우려고 하니 막막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김이나 발효식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식품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실제 이용 가능한 B12 함량이 일정하지 않고, B12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사람 몸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 유사체(analogue)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식'이라는 이미지만 믿기엔 근거가 불충분합니다.
- B12는 적혈구 형성, DNA 합성, 신경 수초 유지에 모두 관여하는 영양소입니다
- 흡수에는 위산, 내인성 인자(intrinsic factor), 회장의 정상 기능이 모두 필요합니다
- 비건 식단에서는 자연 식품만으로 B12를 충족하기 어려우며, 강화식품이나 보충제가 필요합니다
- 해조류나 발효식품의 B12는 생물학적 이용 가능성이 불안정해 유일한 공급원으로 삼기엔 근거가 부족합니다
고령층 B12 주의, 문제는 '먹었는가'가 아니라 '흡수됐는가'입니다
부모님 식사를 떠올리면서 이 부분이 더 와닿았습니다. 아침에 달걀 프라이, 점심엔 고등어구이, 저녁엔 우유 한 잔. 겉으로 보면 B12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B12 공부를 한 후로는 이걸 그냥 안심하고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위축성 위염(atrophic gastritis) 발생률이 올라갑니다. 위축성 위염이란 위 점막이 만성 염증으로 인해 얇아지고 위산과 소화 효소 분비가 줄어드는 상태를 말합니다. 앞서 설명한 흡수 과정 첫 단계, 즉 음식 단백질에서 B12를 분리하는 과정이 여기서 막힙니다. 이것을 음식 결합 코발라민 흡수장애(food-bound cobalamin malabsorption)라고 부릅니다. 음식에 B12가 있어도 위산이 부족하면 단백질 결합을 끊지 못해 흡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더해 메트포르민(당뇨 치료제)이나 장기간 복용하는 PPI 계열 위산 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도 B12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제가 공부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영양소 흡수까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평소엔 잘 하지 않으니까요.
채식과 고령층의 문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출발점이 다릅니다. 채식에서는 애초에 B12가 든 식품을 먹지 않는 '섭취 부족'이 핵심이고, 고령층에서는 먹고 있는데도 흡수가 안 되는 '흡수 장애'가 핵심일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혈중 B12 수치가 낮아질 수 있지만, 접근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의 비타민 B12 하루 권장량은 2.4μg입니다(출처: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그런데 보충제를 보면 500μg, 1,000μg 같은 숫자가 적혀 있어서 처음엔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건 흡수율 때문입니다. 고용량에서는 내인성 인자를 거치지 않는 수동 확산으로 일부가 흡수되는데, 500μg 기준으로 흡수율이 약 2%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숫자가 크다고 몸에 그만큼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제품에 적힌 1,000μg을 하루 필요량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피곤하다고 B12부터 집어 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전에 먼저 물어볼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면은 충분한지, 철분이나 갑상선 문제는 아닌지, 복용 중인 약은 없는지. 피로의 원인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B12가 충분한 사람에게 고용량 B12를 추가해도 에너지가 늘어난다는 근거는 현재로선 없습니다.
B12를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바꾼 습관은, 영양소를 볼 때 '먹은 양'과 '흡수된 양'을 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채식을 하는 분이라면 B12가 들어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고령층이라면 식사에 B12가 있어도 위산 분비나 내인성 인자 문제로 흡수가 제대로 안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피곤할 때 영양제 먼저 찾기보다, 왜 피곤한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 그리고 B12가 부족할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면 제품을 사기 전에 검사로 확인하는 것. 저는 그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강정보는 '무엇을 살지'보다 '무엇을 먼저 살펴볼지'를 알려주는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Office of Dietary Supplements. Vitamin B12: Fact Sheet for Health Professionals. / Institute of Medicine. Dietary Reference Intakes. National Academies Press.